달걀이 마술에 걸리는 시간

 

 

달걀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먼저 영양 만점의 온갖 요리로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는 달걀로 야구공에 맞은 광대뼈 주위의 붓기를 가라앉히기도 했고,

정치적인 적에게 던지는 ‘저강도 폭력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세포의

크기도 커서 맨눈으로 단세포를 관찰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죠.

달걀의 여러 면 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은 아마 요리 재료로써의 모습일 것입니다.

껍질을 까면 나오는 흰자의 탱탱한 식감과 노른자의 단백함은 간식으로 먹기에 제격이니까요.

그래서 삶은 달걀은 기차여행의 친구일뿐 아니라 찜질방에서도 단골메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흐물거리던 달걀의 속 액체가 어떻게 단단해지는 걸까요?

오늘은 달걀이 익는 과정을 살펴보고, 맛있는 반숙을 만드는 방법까지 소개해보겠습니다.

달걀이 가진 단백질 분자는 폴리펩티드 사슬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 사슬은 수소결합이나

이온결합과 같은 2차 결합에 의해 구부러져 있습니다. 전체 분자가 동그란 모양, 즉 구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열에너지를 주면, 단백질 분자들의 결합이 끊어지고

알부민 단백질 분자들이 실 모양으로 퍼집니다

 

계속 가열하면 분자들이 물결치다가 마침내 뒤엉키게 됩니다. 그러면 분자가 흰자위에 있는

물을 포획해 3차원의 망구조가 생기게 되고, 이런 분자간의 교차결합이 이뤄지면 흰자위는

투명한 액체에서 불투명한 젤로 변합니다. 더 강한 열을 구면 폴리펩티드 사슬 간의 교차결합이

늘어나 단백질이 더 단단해집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달걀에 대한 취향이 다릅니다. 모두가 삶은 달걀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삶은 달걀 중에서도 완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반숙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입맛에 맞는 삶은 달걀을 만들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과학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과학자가 있으니

바로 옥스퍼드대의 세포생물학 교수인 리처드 가드너(Richard Gardner)입니다.

그는 식탁에 오른 달걀의 노른자 온도와 흰자위의 온도가 많은 차이를 보이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흰자위와 노른자위에 각각 미세 온도계를 삽입하고 달걀을 삶는 실험을 시작했죠. 실험 결과를

살펴보니 노른자위는 20℃부터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100℃ 근처에서 평형상태를 찾았습니다.

이에 반해 흰자위는 30℃에서 시작해 노른자위보다 위쪽에서 비슷한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먼저 완전히

익어버렸습니다.

노른자위가 먼저 익기 시작했지만 흰자위가 더 빨리 익은 뒤에 더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은 것이죠.

어찌 보면 이런 결과는 당연해 보입니다. 흰자위가 노른자위 외부에서 먼저 열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 노른자위의 단백질은 작은 기름핵 주변에 엉겨 붙어있는데요. 이 때문에 노른자위의 알부민 분자를

응고시키는데 들어가는 열에너지가 흰자위보다 많습니다. 노른자위의 알부민 분자들을 기름에서 떼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른자위는 흰자위보다 높은 온도에서 익습니다.

사실 완숙을 원하는 사람은 실험 결과와 상관없이 100℃의 끓는 물에 달걀을 5분 이상 담그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반숙을 즐기는 아이의 부모라면 정교한 과학적 실험의 결과를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험결과 노른자위는 68℃ 이상에서 익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흰자위가 익기 시작하는 63℃와는 적지 않은 차이죠.

이 두 온도의 차이가 바로 완숙과 반숙을 의도대로 성취해낼 수 있는 마술의 구간인 셈입니다.

즉, 63℃와 68℃ 사이에서 달걀을 익히면 맛있는 반숙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수는 많습니다. 달걀의 크기와 흰자위와 노른자위의 농도, 첨가물의 산성도 등도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렌 피셔(Len Fisher)는 실험을 기초로 ‘맛있게 달걀 삶기’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중간크기의 달걀은 끓는 물에 집어넣고 4분 동안 삶을 것을 권합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있는데요.

한참 뒤에 껍질을 벗길 생각이라면 4분보다 일찍 물에서 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끓는 물에서 꺼낸 후에도

잘 단열된 중심부가 계속 익어가기 때문이죠.

이렇게 달걀을 꺼낸 뒤 한동안 놓아두면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알부민 분자들 사이에 교차결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너무 단단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익은 맛있는 달걀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달걀을 삶은 다음 얼음 속에서 굴리는 것이죠. 이 또한 달걀 내부의 열로

스스로 안쪽을 익게 하고, 흰자위의 바깥쪽은 단단해지기 전에 재빨리 식히는 요령입니다.

끓는점이 63℃와 68℃ 사이의 액체를 구해 달걀을 삶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건에 맞는 액체는 끓는점이 64.6℃인 메탄올입니다. 만약 이것으로 달걀을 삶으면

메탄올이 달걀의 다공질 껍질을 뚫고 들어가 독성물질을 함유한 달걀을 맛보게 될 수도 있어요.

결론적으로 달걀 반숙을 만들기 위해서는 63℃에서 68℃사이의 온도에서, 4분 이하의 시간동안 익히면 됩니다.

또 삶은 달걀을 꺼낸 뒤 얼음에 굴리면 더 맛있는 반숙을 맛볼 수 있고요. 자, 이제 맛있는 반숙 요리법을 알았으니

오늘 간식은 삶은 달걀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글 : 김병호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