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다 해준다고? 됐어, 몰라, 말하기 싫어
[토요판/연애]이성에게 짜증나는 5가지 경우

▶ 이보 전진이든 일보 후퇴든 모든 연애는 그 나름의 성장이 아닐까요? 나의 밑바닥을 보이고 남의 밑바닥을 보는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요. 그 한뼘의 성장을 공유하고자 새로 인사드리는 ‘연애면’입니다. 앞으로 ‘가족면’과 격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제보도 많이 주세요. 미팅·소개팅 합쳐 100번은 넘게 했다는 청년유니온 양호경 정책기획팀장의 연애칼럼도 함께 찾아갑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되도 않는
허세 부릴 때 가장 화가 나
남자들은 여자 소통불가 지적
별거 아닌 일에 삐쳐 말 안해
하루종일 풀어줘야 할 때 답답

“나 살쪘어?”라는 무서운 질문
그렇다 하면 “왜 그리 말하냐”
안 그렇다 하면 “관심이 없다”
알듯 모를듯한 연애의 재미

‘어떤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나?’ 이렇게 물으면 답은 뻔하다. 남자라면 잘생겨야 하고 여자라면 예뻐야 한다. 당연히 성격도 좋아야 한다. 질문을 바꿔 ‘어떤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나’를 물으면 어떨까?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공연연출가)는 최근 자신의 ‘문화콘텐츠 기획’ 수업을 듣는 남녀 학생 79명을 대상으로 ‘이성에게 짜증나는 5가지 경우’를 물었다. 주관식이라 답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42명의 여성 응답자 가운데 22명은 ‘(남자가) 허세 부릴 때’를 똑같이 지적했다. 남자는 ‘화난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때’, ‘용서 구해도 묵언 수행할 때’ 등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소통 불가’를 가장 많이 꼽았다. 수업에 참여하는 이지애(가명·23·여)씨와 김대현(가명·19·남)씨를 22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만나 ‘흔한 남자, 흔한 여자’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여자들은 허세 이야기에 압도적으로 공감했어요. 되도 않는 일에 어깨 빡 올라가서 ‘오빠가 다 해줄게’ 할 때가 전형적인 허세죠. 한번은 소개팅 남과 집에 같이 가다가 술 취한 아저씨에게 밀려 넘어진 적이 있었어요. 근데 아저씨 가고 난 뒤 ‘아씨, 저걸!’ 하면서 가만히 있는 거예요. 지켜주진 못하고 허세만 부린 거죠.”

지애씨의 공세에 대현씨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게 이해는 되지만, 남자들이 그러는 것도 이해해야죠. 남자답게 강해 보이고 싶은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 허세로 나타나는 거죠. 이성으로서 남자다움을 어필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은 ‘여자를 욕할 때’, ‘여자는 자고로 ~라고 할 때’도 싫다고 답했다. 남성이 내뱉는 성차별적 발언이나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비현실적인 남성성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런데 여자는 동시에 ‘(데이트가 끝난 뒤) 집에 안 데려다 줄 때’, ‘계산할 때 네가 사라고 먼저 말할 때’도 화가 난다. 남성과 여성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면서, 내 남자가 나를 ‘여자’로 대우해주지 않을 때 화가 난다는 이야기다. 이건 좀 ‘이중적 태도’ 아닌가. 지애씨가 설명했다. “제 생각엔 20대 초중반의 여자들이 자기의 가치관이 충분히 완성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론 저도 제게 관심 있는 남자라면 밥 먹자고 하면서 밥 사줄 것 같아요. 데려다 주고, 돈을 쓰고 하는 게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나한테 관심이 있느냐 아니냐의 척도처럼 느껴지는 거죠.”

남성은 이런 여성의 모습이 불편하다. ‘불리할 때만 여자인 걸 내세울 때’, ‘남녀평등 외치면서 귀찮은 일 빠질 때’, ‘남자보고 돈 다 내라고 할 때’ 여성이 싫다는 남자들의 답이 눈에 띄었다. “양성평등은 학습된 거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기대고 싶고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주고 싶은 건 본능인 것 같아요. 제 여자친구는 밥 먹을 땐 더치페이 하는데, 어쩌다 ‘가방 안 들어주느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남녀평등을 강하게 주장하다 가끔 그러면 얄밉기도 하죠. 근데 남자는 ‘남녀는 평등해야 하니까 네가 들어’라고 하면 쪼잔한 사람이 되거든요. 남자들이 남자답게 쿨하길 바라는 거예요.” 대현씨의 하소연이다.

이쯤에서 남자 다수의 불만인 ‘소통 불가’ 이야기를 꺼냈다. 대현씨가 쓴 여자가 싫은 5가지 순간에도 ‘별거 아닌 일에 삐쳐 하루 종일 풀어줘야 할 때’, ‘아무거나라고 할 때’, ‘몰라, 됐어 등으로 대화를 회피할 때’가 포함돼 있었다. 대현씨가 말했다. “화난 게 뻔한데 말을 안 해요. 한번은 친구랑 술을 마신다니까 ‘알았어, 그럼 난 잠이나 자야지’ 하고 쌩한 거예요. 그래서 카카오톡을 계속 했더니 ‘딴 사람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지 왜 나한테 연락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집에 가면서 한번, 집에 도착해 한번, 자기 전에 한번 전화했는데 모두 다 통화중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잤는데 다음날 ‘내가 전화 안 받는데 잠이 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미안하다고 했는데 ‘됐어, 몰라’ 하면서 삐쳐 있었어요.” “아니 그걸 어떻게 모르지?” 듣고 있던 지애씨가 답답해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이 질문의 무한 반복이죠. 여자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했다, 미안하다를 반복하는 게 싫은 거예요.” 지애씨의 지적이다.

‘객관적인 사회자’ 입장에서 보면 남자가 좀 억울해 보인다. 잘 설명해주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까? “저는 그걸 말 못하겠어요. 적어도 남자친구라면 나랑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내가 화난 걸 전혀 눈치 못 챘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 상황에서 왜 화났는지 말하면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고 자존심 상하는 거죠.” 화난 이유를 모르는 남자는 여자 눈엔 ‘그만큼 내게 관심 없는 사람’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대현씨가 느끼는 여자의 미스터리를 지애씨가 한마디로 정리했다. “여자들은 공감받고 싶어하고 자신이 특별하게 생각되길 바라죠. 그게 채워지지 않았을 때 화가 나는 거죠. ‘내 말에 집중 안 할 때’, ‘성의 없이 대답할 때’, ‘연락 안 올 때’, ‘화장했는데 못 알아볼 때’, ‘친구와의 술자리가 우선시될 때’ 등의 응답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한번은 시험기간에다 조모임까지 겹쳐 힘들어서 남친한테 ‘나 힘들다’고 했더니 학교 때려치우래요. 저는 그냥 공감해주길 바랐는데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요.”

대현씨의 반응이 이어졌다. “답정넌(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하기만 하면 돼)이네요. 남자들이 왜 ‘나 살쪘어?’란 질문이 무서운 줄 아세요? 살쪘다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고, 살 안 쪘다고 하면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하고.” 지애씨가 현명한 대답을 가르쳐 준다. “예, 아니오가 아니라 ‘밤에 라면 먹었어? 조금 부은 것 같긴 한데 살찐 건 아니야’라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부정을 원하는 거죠.”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정리한 건 대현씨의 마지막 말이었다. “여자란 참 알 듯 모를 듯 할 때가 많지만, 연애는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탁현민 교수의 분석도 비슷하다. “개인간의 사적 감정을 매개로 하는 연애 관계는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똑같은 행동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멋져 보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그러면 허세 부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상대방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내 감정의 문제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짜증 나?”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품절남은 현명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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