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의학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을 덥게 하라. 그러면 그대는 모든 의사를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초 네덜란드의 명의 헤르만 부르하버(Herman Boerhaave , 1668~1738)의 저서 <의학의 가장 심오한 비밀>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에 나오는 ‘두한족열’(頭寒足熱) 또는 ‘상랭하열’(上冷下熱)의 건강 비결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을 따뜻하게 하는” 건강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생활수칙이다.

한의학적으로 인체는 음양의 조화를 이뤄야 건강하다. 우리 몸에서 양기는 위쪽, 음기는 아래쪽에 위치한다. 양기는 위에서 내려와 아래쪽의 음기를 위로 밀어올리고, 음기는 위로 올라와 따뜻한 양기를 몸 아래로 내려가게 한다. 이렇게 양기와 음기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소통되어야 사람은 비로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머리를 식혀 양기를 내리고 발을 따뜻하게 해서 음기를 올리는 두한족열은 음양의 순환·소통을 돕는 건강 비결인 셈이다.

정신적 노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직업이 다양해지고 정신적인 업무와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현대인에게 양기가 몸 위로 올라간 뒤 내려오지 않아 생기는 증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양기가 몸 위에서 정체되면 음기는 몸 아래에서 침잠되며 두통, 어지러움, 불면, 안구 충혈, 소화불량, 복통, 수족냉증, 생리통, 설사 등의 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경성 질환은 물론이고 간접적으로 알레르기 질환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며, 외부의 기운에 대응하는 능력(면역력)을 떨어뜨려 감기 같은 감염성 질환도 자주 걸리게 된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지친 머리를 식히고자 할 때에는 국화차나 박하차가 좋다. <동의보감>에는 “국화는 맛이 달고 쓰며 두통, 눈의 충혈, 흉중번열(煩熱),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치료하고 풍열(風熱)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라고 쓰여 있다. 박하 또한 머리와 눈을 시원하고 이롭게 하며, 특히 상초(上焦)의 풍열을 해소하는 효능이 있어 머리를 식히는 데 안성맞춤이다. 흔히 관자놀이라고 부르는 부위에 있는 태양(太陽)혈이나 뒷머리와 목이 연결된 부위의 풍지(風池)혈을 자극하면 복잡했던 머리가 시원해지며, 눈의 피로도 풀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음기가 위로 올라가게 되면 양기는 자연히 아래로 밀려온다. 머리를 식히려면 하체를 따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체를 따뜻하게 하는 건강관리법 중에는 족욕과 반신욕이 있다. 족욕은 발을 15~20분 동안 복사뼈 위쪽까지 따뜻한 물에 담그는 방법으로 별다른 도구 없이 가정에서 간단히 즐길 수 있다. 반신욕은 전신욕과 다르게 가슴 아래(명치)까지만 따뜻한 물에 담그고 팔도 가능하면 물에 담그지 않은 상태로 하는데, 시간은 20~30분 정도가 적당하다. 족욕이나 반신욕을 하면 몸속부터 점점 따뜻해지며 전신에 땀이 난다. 이때 머리와 이마에 땀이 나는 것은 발부터 머리까지 기혈의 순환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임효택/다봄한의원 원장·청년한의사회 학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