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명당형의 표준주택 구조와 형태

명당은 생기가 많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자연적인 명당과 건축적인 명당으로 구분된다. 자연적인 명당은 산이나 강, 토질 등의 자연적인 조건에 의해 발생된 명당을 말하고, 건축적인 명당이란 땅의 조건 이외에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의 건축 조건, 즉 건축물의 형태, 방위, 배치 방법, 대문, 마당, 도로 등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명당을 말한다.

지리적으로 명당이라고 해도 건축을 잘못하면 지리적 명당 효능은 반감된다. 반면, 비록 지리적으로 명당이 아닌 장소라고 해도 건축 명당을 만들면 불행한 일을 면하게 되고 어느 정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생기 있는 건물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당을 이루는 산의 형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즉 건물 평면은 명당을 이루는 산의 등고선을 적용하고, 지붕 형태 역시 산 형태를 적용하여 만든다. 평면과 지붕 형태는 주택 기운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들의 형태에 따라 건물 내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명당 건물에서는 건물 중심에 기운이 모여 중심집중형 공간이 되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조화와 화합을 이룬다. 또 안정된 진동과 소리가 발생하여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므로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되며,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단결심이 있게 된다.

1. 명당 주택의 평면

명당 주택이란 내부에 생기가 모이는 주택을 말한다. 명당 주택의 평면은 생기 있는 산의 등고선에 비교할 수 있다. 등고선은 원형과 수직선형, 정사각형이 대부분인데, 명당형 등고선 형태는 정사각형이거나 건물 깊이에 대한 전면 길이 비율이 1:2 미만의 장방형이다. 반대로 건물 깊이에 대한 전면 길이의 비율이 1:2 이상이거나 ㄱ자, ㄷ자인 평면은 흉가로 분류된다.

또한 원형이나 팔각형 평면의 공간에서는 비록 내부에 생기는 많이 모이지만, 칸막이가 있는 경우에는 사용상 불리한 점이 많아 일반적인 주택 평면 형태로는 부적합하다.

2. 명당 주택의 지붕

이상적인 지붕 형태는 생기를 발생하고 한국의 산 형태 및 전통사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집에 있어서 지붕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어 외형상 사람의 얼굴처럼 중요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이 만나는 공간이며, 집 내부에서는 양의 기운이 모이는 공간이다. 따라서 지붕에서 발생되는 기운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사람은 그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의 산 형태는 목산, 금산, 수산 형태가 대부분이며, 화산과 토산은 그리 많지 않다. 전통적인 기와지붕은 수산에 속한다. 수산은 중심 부분이 낮고 좌측과 우측으로 넓게 벌려져 있으므로, 중심 기운이 부족하여 다른 산 형태에 비해 기운이 아주 빈약하다.

생기 있는 산 형태로는 목산과 금산이 가장 이상적이다. 목산 중에서 생기가 많은 산으로는 서울 북악산을 꼽을 수 있고, 금산 중에서 생기가 많은 산은 인왕산을 꼽을 수 있다. 북악산은 경복궁의 주산이며, 인왕산은 경복궁의 백호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두 산은 모두 주인격이면서 강체의 산이어서 강한 생기와 단결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북악산과 인왕산 형태를 본받은 지붕이 가장 이상적인 지붕이라고 할 수 있다.

북악산은 좌우 균형을 이루면서 중심 부분이 반듯하게 솟아 있어 마치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와 같다. 북악산 상부 형태는 피라미드와 같이 안정감을 이루면서 높이 솟아 있다. 이러한 산의 형태는 강력한 상승 기운을 나타낸다. 산의 경사면은 수평면으로부터 약 50도 각도를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어 직선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탄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북악산 형태를 주택의 지붕에 인용하면, 지붕면은 전체적으로 모임 지붕으로 하고 경사면 각도는 50도로, 지붕 상부는 모임 지붕의 형태로 만들면 된다. 또 북악산 하부는 넓게 퍼져 있어서 산 정상부를 안정되게 받쳐 주는 형태를 이루고 있으므로, 지붕 하부는 상부를 넓게 받쳐 주는 받침 형태를 이루게 된다. 이런 형태의 지붕을 목산형 명당 지붕이라고 말하게 된다.

인왕산은 전체적으로 큰 바가지 형태의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 금산의 대표적인 산이다. 인왕산은 강력한 기운을 갖고 있어서 예로부터 왕기를 갖고 있다고 전해지며, 이러한 왕기에 의해 조선초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경복궁을 배치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인왕산 형태를 상부와 하부로 구분하여 분석하면 상부는 원형의 돔 구조에 해당된다. 돔 구조는 석굴암의 천장과 같은 형태이며, 궁궐이나 종교 건물 등에서 많이 사용된다. 인왕산 하부 형태는 돔을 아래에서 받쳐 주는 형태에 해당되며, 이러한 형태의 지붕을 금산의 명당 지붕 형태라고 말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명당 지붕은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을 결합한 형태이다. 즉 기와지붕의 상부에 초가지붕 형태를 올려 놓으면 인왕산이나 북악산 형태의 지붕 모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이 결합한 형태의 지붕을 초기 지붕이라고 하게 되는데,이러한 초기 지붕의 특징은 S자 형태의 곡선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지붕 상부는 초가와 같은 돔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 하부는 기와지붕 곡선과 같이 처지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S자 곡선은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 형태와 동일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 강한 생기를 이룬다.

3. 명당 표준 주택의 설계도

명당 주택은 명당형 평면과 지붕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명당 주택을 6평, 12평, 18평, 24평, 30평 등으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주택 내부에 있어서 각 방의 배치는 대지 방위에 따라 다르게 되나 본 설계에서는 정남향을 기준으로 했다.

가. 6평형 주택

한 사람이 혼자 살기에 가장 적당한 면적을 6평으로 볼 때, 6평 넓이의 단독 주택을 설계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평면은 정사각형(4.5미터×4.5미터)으로 하고, 현관·주방·화장실·보일러실 등을 모두 한쪽에 배치한다. 주방·화장실 등의 천장 상부에는 다락방을 만들어 수납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한다.

거실의 평면 형태는 1자 형으로 하고, 천장은 다른 방보다 높게 하여 주택의 생기가 이곳으로 모이도록 한다. 거실 창문은 전면에만 설치하고 그 이외의 벽에는 가급적 창문을 두지 않는다. 수납 공간 출입문은 거실 상부 벽에 설치한다. 보일러실에는 경유 또는 가스를 사용하는 보일러를 설치, 난방과 취사에 이용한다. 보일러실 출입구는 외부로 설치하여 유독 가스가 실내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바닥은 다른 방보다 낮게 하여 온수의 순환이 쉽게 하는 한편,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의 영향을 최소화한다. 화장실에는 수세식 변기와 세면대·샤워기·세탁기 등을 설치한다.

현관은 마당과 출입문이 있는 전면에 둔다. 정남향 건물에서는 남동쪽 대문이 가장 좋은 방위이므로 이곳에 현관을 배치하고, 현관 출입문은 안으로 열게 하며, 현관 안쪽에는 신발장을 배치한다.

지붕은 인왕산 형태의 돔 지붕이나 북악산 형태의 모임 지붕, 또는 이 두 가지의 절충형 등이 바람직하다. 정사각형 평면 위에 명당 지붕을 만들어야 명당 주택이 된다.

나. 12평형 주택

신혼부부와 같이 두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면적을 12평으로 보고, 12평 넓이의 단독 주택을 명당형으로 설계하면 그림과 같다.

다. 18평형 주택

부부와 한 명의 자녀로 구성된 3인 가족이 거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평형은 18평형이다. 평면 형태는 정사각형과 철자(凸) 두 가지가 있으며, 설계도는 다음과 같다.

정사각형 길이는 7.8미터×7.8미터로 한다. 철자형 평면 깊이의 길이는 6.3미터이며 전면 길이는 9.0미터로, 깊이에 대한 길이의 비율이 1:1.4이다. 비록 정사각형은 아니지만 비율이 1:2 미만으로 명당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들 주택 전면에는 거실과 주방 등 낮에 주로 활동하는 공간을 배치하고, 화장실은 그 사이 또는 전면에 둔다.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안방이므로, 안방은 주택 중심 후면의 생기가 가장 많은 곳에 배치한다. 주방은 주부가 많은 시간 동안 작업하는 공간이므로 거실과 가까우면서 밝고 명랑한 쪽에 배치한다.

기존의 배치 방법은 햇빛이 쪼이는 남쪽에 안방을 두고, 주방은 북쪽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과거에 안방은 가족이 모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고, 주부의 작업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주거 형태는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 거실로 바뀌었고, 주방이 단순히 식사를 준비하는 공간에서 주부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주부가 주방에 있는 동안에도 거실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주방을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방을 전면에 배치하게 되면 주방에서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고, 대문으로 출입하는 사람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라. 24평형 주택

부부와 자녀 두 명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의 주택 면적으로는 24평(80평방미터)이 적당하다.

24평 규모의 주택 설계도는 정사각형(9미터×9미터)과 중자형(7.6미터×10.2미터)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안방을 비롯해 3개의 방이 있다.

마. 30평형 주택

부부와 자녀 두 명이 살면서 약간의 여유가 있는 주택 면적으로는 30평형(100평방미터)이 적당하다. 30평형 규모의 주택 설계도는 그림과 같이 정사각형(10미터×10미터)과 중자형(8.0미터×11.4미터)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방은 안방을 비롯해 3개의 방이 있다.

바. 40평형 이상의 주택

      대형 평수의 주택은 풍수에서는 좋지 않게 평가하고 있다. 기가 살아 있으려면 조화를 이루워야 하는데 가족수에 비해 평수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생기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다만 여러가지 장식품과 기호품으로 허전한 공간을 매꾸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제16장 명당터와 주택의 실례

1. 인촌 김성수 선생의 생가

인촌 김성수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정치가로서 재물과 덕망, 정치가로서의 능력을 모두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재물과 관직을 모두 겸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촌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와 줄포리의 고택은 아직도 원형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데, 두 곳 모두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인촌의 선대가 만석군이 된 줄포리 주택은 초가지붕이면서도 그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일반적인 초가집은 지붕이 야트막한 데 비해, 이 집은 기운차게 높이 솟아 있다. 이러한 형태는 금산(金山)의 강체 형태이다.

인촌 생가가 있는 인촌리의 지세를 살펴보면 청룡과 백호가 가지런하게 뻗어 내려와 있는데, 용호는 순용에 해당되며 이러한 지세에서는 인자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루어진다.

또 주봉은 노적봉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매봉이며, 인촌 생가는 이 매봉으로부터 북쪽을 향해 내려온 능선의 혈 위에 자리잡는 한편, 멀리 북쪽에 있는 바다를 향해 배치되어 있어서 배산임수의 원칙이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 배산임수 원칙에 따라 배치된 집은 마당에 들어서면 내부 공간에서 밝은 기운이 발생되어, 북향 집이라고 해도 북향 집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 집이 그 대표적인 경우로, 북향 집에 대문 역시 북향이다.

이러한 집의 배치를 음양으로 분석하면, 마당 중심에서 봤을 때 건물은 남쪽에 있으므로 음의 기운을 갖게 되고, 대문은 북쪽에 있으므로 양의 기운이 들어옴으로써 결과적으로 집 내부에는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뤄 생기를 발생하게 된다.

또 오행으로 분석하면, 남쪽은 오행상 불(火)에 해당되고 대문은 북쪽이어서 물(水)에 해당되어 상극 관계를 이루지만, 주택과 대문이 모두 동사택 방위로 일치하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므로 전체적으로 좋은 방위의 주택이다.

2.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안국동 주택

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는 고려말 충신 정몽주의 생가 터가 지척에 있는 등, 예로부터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특히 조선 시대 맹사성 대감의 주택이 있어 예전에는 맹현골로 불리던 곳이기도 하다. 또 주변에 구 경기고등학교(현재 정독도서관), 덕성여자중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창덕여자중고등학교 등이 즐비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교육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얼마 전까지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 김활란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박흥식 전 화신백화점 사장 등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던 곳이다. 현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 유가족들만 이곳에 살고 있다.

서울시 민속사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집은 대지 1,411평, 건평 250평으로 안채와 사랑채, 별당채로 구분되어 있다. 이 집은 1800년경 당시 권력층에 있던 민(閔)모 대감이 자신의 주택으로 축조했는데, 당시 주택의 규모가 너무 커서 고종 황제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개화론자인 박영효가 이 집에서 살았고(1861~1939), 윤보선 전 대통령의 선친 윤치소씨가 매입해 살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충청남도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의, 일명 새말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10세를 전후해 이곳으로 이사온 후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줄곧 이 집에서 살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곳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이 집은 북한산의 큰 힘을 받은 말봉우리가 큰 용을 일으켜 남쪽, 즉 서울 시내를 향해 뻗어 내려가는데, 바로 생룡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강한 용은 강력한 추진력을 의미하며, 장룡은 오랫동안의 발복을 나타낸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용의 생기에 힘을 입었다고 보여지며, 대통령직을 하야한 후에도 별 탈 없이 조용하게 지낸 것은 용의 강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집 마당에 서면 백호인 북악산이 매우 가깝게 솟아 집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북악산은 맹현골의 전반적인 지세에 있어서 주산인 동시에 백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악산은 그 형태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봉오리와 같고, 강체의 목산으로 문필봉(文筆峰)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문필봉 기운은 선비의 지조와 중심 사상을 갖게 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준다.

3. 이재형 전 국회의장 생가

이재형 전 국회의장이 태어나고 성장한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343번지의 생가 일대는, 얼마 전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산과 나지막한 언덕, 실개천 등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전원 풍경이었다. 이 전 국회의장 집안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30여 년 전이며, 이 전 국회의장이 태어나고 자란 집은 선친인 이규응 옹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이규응 옹은 이 집에서 5남4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웠는데, 이재형 전 국회의장이 장남이며 2남 재준(전 대림산업 회장), 4남 재우(대림통산 회장), 5남 재연(금성사 사장) 등이다. 3남 철용씨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 집은 군포시를 비롯해 안양시, 안산시 등의 주산인 수리산의 맥이 동남쪽으로 연결되어 태을봉을 이루고 다시 그 맥이 집에 연결된다. 수리산의 태을봉은 모두 강한 형태의 목산이며, 중심이 잘 잡힌 문필봉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의 안산인 노적봉은 집을 향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노적봉이 안산으로 있는 지역에서는 큰 재벌이 배출되는데, 이 집안에서 몇 개의 기업 대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노적봉의 소응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집은 시골의 전형적인 남향 집으로서 안채 12평, 사랑채 13평 등 총 25평으로 되어 있는데, 농사에 필요한 창고 등의 면적을 제외한다면 그나마 주택 면적은 더욱더 줄어든다. 이렇듯 작은 공간에서 9남매가 모두 훌륭하게 자라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넓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의 적정 면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4.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마을은 노적봉을 주산으로 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강한 능선의 마지막 평탄한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담안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산들이 마치 담을 둘러친 것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산들은 모두 노적봉 형태를 띠고 있다.

호암 생가는 노적봉에서 내려온 내청룡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산으로부터 장룡을 이루고 내려온 청룡은 이 집의 주룡이 되는 한편 집의 좌측 울타리와 같은 형태를 이룬다. 용의 길이는 발복 기간을 나타내므로 장룡에서는 발복 기간도 장기간이 된다. 호암 집안이 대를 이어 재벌이 된 것은 이러한 장룡의 기운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또 청룡이 수구를 막고 있는 지세로서 생기를 이룰 뿐만 아니라, 10리 밖에서 흐르는 남강은 호암 생가가 있는 쪽으로 역수를 이룸으로써 생기가 더욱 강하게 발생한다.

호암 생가는 전체적으로 남서향의 평탄한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다. 전형적인 한옥으로 一자형 평면 형태이며,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런 대지에서는 정남향으로 배치하기 쉬운데, 호암 생가는 주룡의 맥과 건물 방위를 일치시키는 배산임수 원칙을 정확하게 따른 것이다.

5. 강릉 선교장(船橋莊)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 옆에 있는 선교장은 한국의 전통적인 민가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명당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흔히 ‘10년 가는 권력 없고 3대 가는 부자 없다’고들 하는데, 이 선교장은 이 말을 무색케 한다. 무려 9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으로 전해 내려오는가 하면 강릉 시장, 고려대·건국대.관동대 등 학계 교수와 출판사 열화당 대표 등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선교장에서 처음 만석꾼을 이룬 것은 지금부터 9대 위인 이내번(李乃燔)씨 때부터이다. 원래 충주에서 살던 이씨 집안이 강릉으로 와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경포대 바로 옆쪽이었다.

점차 가산이 늘어나자 좀더 넓은 터를 찾아 나섰는데, 어느 날 족제비들이 집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족제비 수는 점차 늘어나 어느 날 한 떼를 이뤄 서서히 서북쪽으로 이동했다.

이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이씨는 족제비떼를 따라 갔는데, 약 1킬로미터쯤 가서 울창한 송림에 이르자 그 많던 족제비들이 모두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이내번씨는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의 지세를 살펴보고는,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명당이라고 생각하고 집터를 이곳으로 잡았다. 이곳으로 이주한 후 이씨는 해마다 풍작을 거두었는데, 수확한 벼를 쌓아 놓으면 커다른 산과 같을 정도였다. 이후 그는 강릉 일대는 물론 타지역까지 이르는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문진 이북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주문진에, 묵호 이남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묵호에 각각 별도의 창고를 두고 관리할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이씨는 이곳에 이사하도록 집터를 알려 준 족제비에게 감사하며 매년 족제비 먹이를 뒷산에 갖다 놓았는데, 그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선교장 지세는 대부분의 명당이 그러하듯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있는데, 대관령에서부터 뻗어 내린 생룡이 시루봉을 지나 경포대 앞까지 내려와 이곳 선교장에서 혈을 이루고 있다.

선교장 마당에서 보면 야트막한 산이 4면을 병풍과 같이 둘러싸고 있어 매우 아늑하게 느껴지는데, 그 아늑함은 정도를 지나쳐 답답해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주산과 청룡, 백호 등이 매우 가깝게 감싸고 있는 명당은 금시발복하는 특징이 있다. 이내번씨가 이곳으로 이사하자마자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도 금시발복하는 지세의 효과를 본 것이다.

선교장 전면에는 경포대가 매우 가깝게 자리잡고 있지만 청룡과 백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강릉 앞바다는 더욱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재산이 모이는 명당에서는 바다나 강물과 같은 큰 물이 직접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선교장은 안채, 행랑채 등 총 99칸의 전형적인 조선 시대 민가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 마당이 정사각형이다.

6. 이화장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살던 곳이며, 이전에는 인평대군이 살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46년 1월부터 1948년 8월 경무대로 옮기기 전까지의 2년 7개월과, 1960년 4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하와이로 망명하기 직전의 1개월 동안이다.

대지 1,820평의 이화장의 본건물은 ㄷ자 형태의 한옥이며, 부속 건물은 5평 남짓한 조각당(대한민국 초대 각료들을 선정한 곳)과 유족들이 생활하는 건물 등 총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70여 평의 본채에는 이 대통령 내외가 쓰던 침실·거실·서재·응접실 등 6개의 방과 주방·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화장은 낙산의 주봉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어 내린 용 위에 자리잡고 있다. 낙산은 산세가 힘차고 단정하며, 서울의 명당수인 청계천이 역수가 되도록 하여 생기를 이루게 한다.

이화장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는 서울 남산이 청룡이며, 북악산이 백호, 인왕산이 안산으로서 사신사가 고루 갖추어진 지세를 이루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은 문필봉 형태를 이루고 있는 북악산인데, 북악산은 백호이면서 안산과 같은 역할을 하여 이화장을 향해 마주 보고 있음으로써 명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화장의 주택 평면은 터만큼 명당 구조를 이루지는 못한다. 이화장은 남쪽을 향해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ㄷ자 평면 형태는 중심력이 부족하다. 주택의 기운은 중심에 강력한 공간이 있어야 생기가 발생하는데, 지붕도 생기가 부족한 형태이다. 특히 낙산의 용이 서쪽으로 내려오는 지세로 보면 서향으로 배치하는 것이 배산임수의 이론에 합당한데도 남향으로 배치, 생기를 저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세는 명당이지만, 건물 형태나 배치 방법은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많았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거주하는 동안 재물이 모이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친 혈육을 보지 못했으며, 말년을 외국에서 어렵게 보내게 되는 데 집 형태 등 주택의 풍수가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7. 경교장과 이기붕의 집

김구 선생이 살았고, 결국 암살당한 경교장(종로구 평동 108번지)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사거리로 통하는 야트막한 언덕의 큰 길 중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경교장은 인왕산 줄기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인왕산은 서울의 백호로서 서울을 서쪽에서 감싸고 있다. 그러나 경교장 위치는 용의 중심선 밖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백호의 후면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풍수로 보아 능선 안쪽은 산의 전면으로서 생기가 모이고, 백호의 좋은 기운을 받는다. 그러나 백호 후면은 생기를 전혀 받을 수 없는 곳이다. 경교장에서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용의 밖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이 살던 집은 김구 선생이 살해당한 경교장 바로 우측에 있다. 자유당 정권 말기에 부정 선거 책임자로 여론의 화살을 받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인 이강석의 손에 죽고 말았는데, 그 집은 철거되고 이후 4·19도서관이 건립, 이용되어 왔다.

이 집은 경교장 서쪽 담 바로 옆에 있어서 인왕산 능선을 완전히 벗어난 곳으로서, 백호 후면에 자리잡고 있다. 백호 전면은 명당이지만, 백호 후면은 흉지이다.

8. 다산 정약용 생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한강의 큰 물줄기가 잔잔하게 흘러나가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행정 구역상 경기도 와부면 능내리에 속하는 다산 선생의 생가 일대에는 다산 선생이 생전에 터를 잡았다는 자신의 묘소를 비롯해, 만년에 독서와 저술 등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사랑채가 복원돼 있다.

다산은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압해(나주의 옛 이름)이고, 호는 다산과 사암 등이며 세례명은 요한이다. 원래 8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지낸 양반 집안이었으나, 그의 고조 때에 이르러서는 모든 관직을 멀리하고 오직 생업과 학문만을 탐구하며 선비 정신으로 가문을 이어 왔다.

다산 선생이 태어난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살던 집터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현재의 생가는 당시의 형태를 어느 정도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생가 터의 지세는 예전과 변함없다.

다산 정약용의 생가는 한강에 매우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주산은 천마산 한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의 큰 물줄기 앞 능내리에서 멈추면서 이루어 놓은 혈이다.

일반적으로 큰 강물이 가까이에 있는 지세에서는 혈이 생기지 못한다. 큰 강물은 강한 음의 기운을 갖고 있어 양의 기운을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또 강물이 있는 지역에서 중요한 점은 수구인데, 수구가 좁으면 혈이 이루어지는 반면 수구가 넓으면 혈이 이루어질 수 없다. 수구가 좁게 되려면 청룡이나 백호가 역수해야 한다. 이곳 지세에서는 다행히도 백호가 역수를 하고 있어서 넓은 한강 기운을 부분적이나마 모아 주고 있다. 따라서 다산 생가의 지세는 백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오행에서 물과 불은 반대의 성질을 갖고 있다. 오상(五常)으로 물은 지식이며, 불은 예절을 나타낸다. 예절이 지나치면 허례가 되는데, 다산 철학의 특징은 그 당시 사회에 만연된 허례와 허식을 타파하고 실질적·현실적인 생산을 원칙으로 하는 실용주의에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철학은 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에서 물은 험한 기운을 나타낸다. 다산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결혼한 후에는 여러 자식을 잃었으며, 형제 중에는 천주교도로 처형된 자도 있었다. 다산 자신도 오랜 유배 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험난한 인생은 곧 생가 앞에 흐르는 큰 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9. 세계적인 건축물과 풍수지리

근세기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씨를 가장 먼저 꼽는다. 라이트 씨는 1869년 미국 위스콘신 주 리칠랜드에서 태어났는데, 1959년 89세로 사망할 때까지 일생 동안 건축 설계에만 전념했다.

그의 건축사상은 동양적 형태가 가미된 유기적 공간 창조였다. 그는 일본의 제국호텔 등 유명한 작품을 설계했으며, 일생 동안 390개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350개는 주택 설계여서 그는 세계적인 주택 설계자로 꼽히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주택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펜실베이니아 주 베어린에 있는 카프만 씨의 주택 ‘낙수장(Water Fall)’을 들 수 있다. 1936년, 그의 나이 67세에 설계한 이 주택은 그때까지만 해도 무명인 그를 일약 세계적인 대가로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건축가들은 수평과 수직적 구조를 강조하여 도약하는 역동성을 나타낸 낙수장 형태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으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주택 작품으로 꼽고 있다.

낙수장은 계곡 사이의 강물 중간, 경사진 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거실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앞뒤 중간 중간에 폭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집 아래로 흐르는 급한 물결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 소리가 항상 집 안에 가득 찬다.

이 집은 비록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고 해도, 풍수로 볼 때는 흉가에 속한다. 집은 강에서 멀리 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흐르는 강 위에 세워져 있다. 강물이 급하게 흐르는 곳에서는 바람도 강하게 불어 생기를 빼앗아 가며, 그곳에 사는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

실제로 이곳이 완공된 후에 입주한 주인은 이 집에서 얼마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밤마다 거실 바닥을 통해 들리는 물 소리와 바람 소리가 마치 귀신 울음 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이 집은 기념관 등으로만 사용되고 있는데, 아무리 아름다운 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도록 풍수에 맞춰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제17장 명당 설계의 실례

1. 춘천의 한모 씨댁

    강원도 춘천시 서면은 예부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서면에 오래 살고 있는 한모 씨 집안은 H농산의 회장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재계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집안이다.

풍수에 조예가 있는 설계사가 이 집을 설계한 것은 1982년경이었다. 서면에서 가장 인물이 많이 나온 집안답게 노적봉 형태를 이룬 주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서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명당 터였다. 설계사는 대지 조건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서 동향 집으로 배치했으며, 대문은 서사택에 맞춰 동북쪽에 두었다.

현재의 집은 1996년 개축한 것으로서 구조와 형태는 과거의 설계를 유지하고 있다.

2. 강릉 최모 씨댁

    강릉의 최모 씨가 풍수에 능한 설계사를 찾은 것은 1981년경이었다. 최씨는 설계뿐만 아니라 집터 물색까지 부탁했는데, 당시 설계사는 강릉 지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설계사가 추천한 집은 시내 한복판에 있던 널찍한 대지의 낡은 기와집이었다. 그 낡고 오래된 집을 명당 터라고 추천하자, 최씨는 “아니, 흉가를 명당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 집에서는 계속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폐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흉가로 낙인찍혀 있는 집이었다.

설계사는 이 집이 흉가가 된 원인은 주택 배치와 형태가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땅 자체는 명당이므로 땅의 조건에 맞춰 집을 지으면 틀림없는 명당을 만들 수 있다고 확언까지 했다.

최씨는 흉가라는 것이 다소 꺼림칙했지만 설계사의 말을 듣고 그 집을 구입하기로 했다. 예전의 이 집은 넓기는 하지만 ㄱ자형으로서 기운이 분산되는 형태였다. 뿐만 아니라 남향 집에 동북향 대문으로 방위도 상극 방위였으며, 마당도 전후 좌우로 분산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설계사는 우선 기운이 모아지는 형태의 배치를 하여 설계를 했다. 건물은 그대로 남향 집을 하되, 기존의 서쪽 대로 대신 남쪽 전면으로 진입로를 넓게 만들고 남쪽 대문을 만들었다.

최씨는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 사업이 부진했으며 집안팎으로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흉가 터에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한 후에는 신기할 정도로 매사가 잘 진행되었다. 최씨는 집을 옮긴 후부터 사업이 번창됐을 뿐만 아니라 시의원에도 당선되는 등 좋은 일이 많았다고, 지금도 그 설계사에게 인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3. 서울 서교동 안모 씨댁

   이 집을 설계한 것은 1989년이었다. 당시 안모 씨는 이곳에서 20여 년간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을 헐고 3대가 함께 사는 2층집을 건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집터 형태는 동서 길이가 길고 남북 길이는 짧으며, 주된 출입구는 동쪽의 공원이 있는 쪽이었다. 그래서 설계사는 건물은 서쪽에, 마당은 동쪽에, 대문은 동북쪽에 배치하여 건물과 대문이 모두 서사택이 되도록 설계했다.

1층에는 거실과 조부모가 사용하는 안방, 부엌과 식당 등을 두었는데, 평면 형태는 건물 중심에 기운이 모이도록 정방형에 가깝도록 배치했다. 그래서 가로 3간, 세로 3간으로 구획하여 중심 부분에 식당을 배치했으며, 1층 현관도 북동쪽에 배치해 안방과 대문이 서사택이 되도록 했다. 계단과 화장실은 모두 주택의 북쪽 구석에 배치하여 내부 기운이 안정되도록 했다.

2층에는 이 집의 젊은 주인 부부의 침실과 서재, 아이들 공부방 등을 배치했는데, 중심 부분에 서재를 두고 서재는 천장을 높게 하여 주택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이도록 했다. 지하실은 창고 및 보일러실과 주차장 등으로 이용하도록 했다.

주택 외부 형태는 중심을 높게 하여 전체적으로 기운이 중심에 모이는 형태를 이루게 했다.

건물 형태는 물론 풍수지리 이론을 적용하여 만든 이 집은 서교동 일대의 아름다운 집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4. 서교동 정모 씨댁

    정모 씨 집의 설계를 앞두고, 당시 정씨 부인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설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새 집을 짓는 것은 그동안 살던 집이 좁은 탓도 있지만, 풍수지리적으로 아들을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집을 짓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계사를 찾아오기 전에 다른 건축사를 찾아가 설계도면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설계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미 다른 사람이 설계를 마친 집을 내가 다시 설계한다는 것이 도의상 맞지 않아 정중히 거절하자, 부인은 이전의 건축사에게 충분한 사례를 하고 양해를 얻었으므로 꼭 설계를 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그래서 설계사는 이전의 설계사에게 사실 확인을 한 후 설계를 시작했다.

이 집터는 도로에 면한 길이는 좁은 반면 깊이는 길었다. 이처럼 땅이 세로로 길고 도로가 좁은 경우에도 전면에 안방을 내는 게 일방적인 배치방법이다.

그러나 풍수에 조예가 깊었던 설계사는 풍수지리 이론에 입각, 도로 쪽에는 주차장과 마당을 설치하고 건물을 후면에 두는 배산임수 원칙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이 집을 남서향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1층 전면에는 거실을 두고, 후면에 안방과 주방을 배치했다. 안방을 후면에 둔 것은 후면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2층 중앙에는 서재를 두고, 그 좌우에는 두 아들 방을 배치함으로써 집 안의

중심이 잡히도록 설계했다. 지붕은 모임 지붕 형태로 했다.

정씨 내외는 불심이 매우 깊어 항상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새 집으로 입주한 지 2년 후 아들이 서울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5. 서초동 이모 씨댁

   서울 서초동은 강남에서도 비교적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전무직을 맡고 있는 이씨는, 젊은 시절에는 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부인과 자녀 하나를 두고 있어 비교적 식구가 단촐한 이씨는, 설계를 의뢰할 때 지하실에 차 두 대만 주차시킬 수 있는 주차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음악실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대지 조건은 야트막한 언덕 위의 정방형 대지로서 북쪽으로 도로와 접해 있고, 지면은 남쪽과 서쪽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대지 조건이 이러했으므로 주택은 동쪽에 두고 서향으로 배치하는 한편, 대문은 도로가 있는 북쪽에 배치함으로써 건물과 대문이 모두 동사택이 되도록 했다. 또 주택 평면은 전면을 3간으로 구획하고 중심 부분이 돌출되게 하여 강한 기운이 중심에 모이게 했다. 내부 중심에는 크고 넓은 거실을 배치해 이곳을 기운의 중심점으로 했다.

건물 형태나 각 방의 형태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1:1.7 미만으로 모두 바르게 했다. 건물 형태는 이탈리아풍으로 하고, 벽체 재료는 철근 콘크리트 옹벽으로 하여 그 위에 페인트 칠을 했다. 설계를 하고 난 후부터는 사실 설계사는 목수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고, 목수는 설계 의도를 정확히 알고 일을 진행해 줘야 하는데, 이 집은 설계사의 그러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진행해 주어서 지금도 설계사는 그 목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주택 내부는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했는데, 준공 후에 건물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울림은 명랑하고 행복한 트럼펫 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6. 포항 이모 씨댁

    1980년도말, 평소에 풍수에 지식을 갖고 있었던 건축 설계사는 포항에 살고 있는 이모 씨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풍수지리적으로 점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집 안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설계사는 요청대로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단층 슬래브 집이었던 이씨 집은 배치와 방위가 모두 좋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이사를 할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집을 헐고 다시 지을 수도 없었다.

설계사는 굳이 다시 집을 짓지 않고 개조를 함으로써 명당 형태로 만들 수 있으므로, 증축을 권했다. 이씨는 설계사가 말한 대로 주택 방위에 맞춰 한쪽을 증축했다. 이후 집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고, 얼마 후부터는 이씨의 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불심이 깊은 이씨 부부는 주택의 2층을 증축하여 서재나 기도실로 사용하기 위해 그 설계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또다시 설계 자문을 구했다. 설계사는 지붕을 원형으로 하되 중심을 높이고 좌우는 낮게 하여, 기운이 중심에 모이도록 설계했다.

일반적으로 둥근 지붕은 공사가 어렵고 공사비도 많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이 집을 증축할 때에 값이 저렴하면서 튼튼한 특수 재료를 이용해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들었다.

완성된 2층 서재에 들어서면 천장이 높고 원형 형태라서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층의 특수한 구조는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고, 심지어는 비싼 값에 팔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아예 외부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층이 만들어진 후 집안에 더욱 여유가 생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고 한다.

7. 중국집 D

   중국집 D를 운영하는 라모 씨가 풍수를 알고 있는 설계사를 찾아온 것은, 강남에서 크게 중국집을 운영하다가 그 건물을 내주게 됨으로써 새로운 터를 잡아 놓은 1990년도였다. 그가 보아 둔 새로운 터란 서울 이태원에 있는 한 호텔 별관 건물이었는데, 이전에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었지만 사업이 부진해 오래도록 비워 둔 곳으로 전체 평수는 200여 평이었다.

라씨가 운영하던 중국집의 음식 맛은 정·재계 고위층 단골이 특히 많을 정도로 이름나 있었는데, 그는 새 터로 옮겨 가서도 사업이 변함 없이 잘되기를 바라며 설계사에게 내부 인테리어 설계를 부탁했다.

설계사는 레스토랑 안팎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외부의 지리적인 조건과 함께 내부, 즉 주방과 홀, 대문 등 각 부분의 배치와 방위, 공간 형태 등을 살펴봄으로써 레스토랑이 망하게 된 원인을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그 건물은 남동향이면서 현관이 남에 위치해 있는, 오행상 상극을 이루고 있었다. 또 주방은 본래 현관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북쪽에 있었으며, 홀이 ㄱ자 형태로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레스토랑과 중국집은 음식점으로서 그 기능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음식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방 위치이다. 주방이 자리를 잘 잡고 있으면 음식 맛이 좋고 모든 일이 순조롭다.

반면에 주방 위치가 좋지 않으면 음식 맛이 없어지는데, 음식점에서 음식 맛이 없으면 제아무리 인테리어를 잘해 놓아도 손님이 들 리가 없다.

망한 레스토랑 터에 중국 음식점을 차려 성공하려면 기존의 대문을 폐쇄하고 다른 자리에 대문을 달아야 했으며, 주방과 홀, 화장실 등 각 부분도 다시 배치해야 했다. 결국 외형만 남겨 놓은 채 내부는 모두 뜯어내고 다시 짓는 것이 되는데, 이렇게 하려면 상당히 많은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라씨는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도 좋다고 하면서, 실내 색깔이나 장식을 완전한 중국식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래서 설계사는 풍수지리 이론에 입각해 설계를 하는 한편, 라씨와 함께 중국 북경과 상해, 대만 등의 음식점을 돌아보기도 했다.

설계는 다음과 같이 했다. 우선 건물이 남동향 건물이었으므로, 현관을 기존의 남쪽에서 남서쪽으로 뜯어고쳤다. 또 북쪽에 있던 주방을 북동쪽에 두었으며, 홀도 중심에 넓게 두었다. 화장실도 서쪽에 있던 것을 방위에 맞춰 동쪽으로 옮겼다.

공사를 마치자 흉가처럼 보이던 건물이 새롭게 단장되어 전혀 다른 건물이 되었는데, 이후 지금까지 계속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제18장 풍수지리 응용과 세계화

1. 나의 본명궁(本命宮)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방위를 타고 난다.음택풍수(陰宅風水)에서 말하는 회두극좌(回頭剋坐)가 있고, 양택풍수(陽宅風水)에서는 본명궁(本命宮)이 있는데 회두극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사람이 머리를 둘 수 없는 방위를 말하고, 본명궁은 그 사람이 살아서 기거해야 할 가장 좋은 기본 방위이다.

양택풍수(陽宅風水)에서는 먼저 개개인의 본명궁을 알고 여기에 맞춰서 집을 구성해야 되는데 이것이 양택풍수의 시작이다.

본명궁(本命宮)의 산출 근거는 양택삼요(陽宅三要)의 ‘삼원명결(三元命訣)’, ‘첩결(捷訣)’ 편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양택삼요(陽宅三要)를 참고하기 바란다.


[방위(方位)]

일백 감(一白 坎)은 정북(正北)쪽. 이흑 곤(二黑 坤)은 남서(南西)쪽.
삼벽 진(三碧 震)은 정동(正東)쪽. 사록 손(四綠 巽)은 동남(東南)쪽.
오황 중(五黃 中)은 남자는 남서(南西)쪽, 즉 이흑 곤(二黑 坤)으로 본다.

여자는 북동(北東)쪽, 즉 팔백 간(八白 艮)으로 본다.

육백 건(六白 乾)은 서북(西北)쪽. 칠적 태(七赤 兌)는 정서(正西)쪽.
팔백 간(八白 艮)은 북동(北東)쪽. 구자 리(九紫 離)는 정남(正南)쪽.


[동사명(東四命)=동사택(東四宅), 서사명(西四命)=서사택(西四宅)]

동사명(東四命); 감(坎), 진(震), 손(巽), 리(離)방의 본명(本命).
서사명(西四命); 곤(坤), 건(乾), 태(兌), 간(艮)방의 본명(本命).


[보는 법]

1)남녀의 구분을 하고 자신이 태어난 해를 표에서 찾아 위로 올라간다.
2)맨 위 칸에 표시된 궁(宮)이 자신의 본명궁(本命宮)이다.
3)이 본명궁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집배치를 결정한다.


[예]

1955년생 남자의 경우를 보기로 한다.1955년생 남자는 중원갑자(中元甲子) 생(生)으로 을미년(乙未年)이고 위로 올라가면 “구자 리(九紫 離)”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1955년생 남자는 리궁(離宮)이 본명궁(本命宮)이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리고, 리(離)방은 동사명(東四命)=동사택(東四宅)에 속하므로 동사택으로 집을 구성 하여야 한다.

즉, 정남쪽의 집배치가 1955년생 남자에게 좋다는 의미이다.



[본명궁 대조표]




















2. 미국에 부는 풍수바람

(1) '풍수사상' 열풍부는 하이테크 <한국일보, 2000. 12. 17>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하이텍·인터넷 기업들 사이에서 풍수 열풍이 불고 있다. 근무 환경을 가장 쾌적하게 조성하기 위해서 풍수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풍수사상을 잘 따르면 재화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로 풍수컨설턴트의 지도에 따라 회사 내부 구조를 바꾼 뒤 바로 매출과 생산 기록을 갱신했다고 하는 회사도 있다. 풍수는 이제 어느 정도 보편적인 단어가 돼서 "풍수에 맞게 사무실을 꾸며 놨다.(I had my office fengshui'd)" 라는 말도 자주 쓰일 정도가 됐다고 한다.

(2) 美 LA 부동산업계 풍수바람 <동아일보, 2000. 5. 8>
LA의 미국인들은 최근 풍수지리설을 신봉하여 주택을 거래하기 앞서 풍수전문가와 상의하는 사람이 급격이 늘고 있고, 풍수 때문에 거래가 깨지는 경우, 풍수전문가로부터 보증서를 받은 다음에야 집을 내놓는 이들까지 생겼다. 특히 감정의뢰가 크게 늘어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LA지역의 노스트롬 백화점은 풍수학적으로 보아 백화점에 들르는 것만으로도 氣와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에서 부동산 매매에서 풍수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될 추세이며, 풍수전문가들이 발행한 '풍수보증서'가 유행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3) 美뉴에이지열풍진단 <중앙일보, 1995. 11. 09>
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일기 시작한 뉴에이지 운동이 미국을 휩쓸고 있다. 첨단과학의 발전을 비웃기나 하듯 이 운동은 동양적·자연주의적 삶과 사고방식을 하나의 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열풍의 일환으로 서점가에서 근래 뉴욕타임즈에 베스트셀러로 장기간 올랐던 책 중에는 예언서와 건강서적, 그리고 동양의 「주역」「도덕경」 등이며 풍수관련 서적도 수백종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4) 미국 주택업계도 風水바람 - 아시아人 고객겨냥 전문가 고용<중앙일보, 1996. 4. 25>
워싱턴의 주택개발 회사에서는 아시아계 고객을 겨냥 풍수전문가를 정식 직원으로 고용했다. 아시아계 고객을 겨냥해 풍수지리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인들도 풍수를 주거생활의 「규범」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5) 미국의 풍수바람 <중앙일보, 1996. 4. 26>
미국에서 의술 뿐만 아니라 학술부문에서도 동양학이 붐을 이루고 있으며 「동양」은 하나의 교과서로 각광받기에 이르렀다. 미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풍수를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순한 신비성으로만 간주하기도 하지만 「좋다니 한번쯤 믿어보자」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풍수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은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6) 클린턴 스캔들은 風水탓 - 中전문가 집무실가구 재배치 주장 <중앙일보, 1997. 2. 5>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는 이유는 백악관대통령 집무실의 풍수탓이라는 주장이 나와 화제다. 뉴욕의 풍수가 펀림은 최선의 해결책은 이사지만 그렇지 못하면 현 집무실의 형태를 바꾸고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면 실내배치와 장식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7) 미 실리콘밸리 때아닌 풍수바람 <중앙일보, 2000. 1. 21>
첨단과학의 상징인 실리콘 밸리에 풍수바람이 거세다. 대표적 일화로 인터넷 사업으로 거부가 된 차이샤오샤오 양은 부동산 업체에 "가격은 묻지 않겠다. 풍수가 좋은 집을 구해달라"고 요구했다. 풍수열풍은 미국인에게까지 번져 요즘 실리콘 밸리엔 풍수를 따지는 현지인이 부쩍 늘고 있다고 홍콩 신문들은 전한다.

(8) 워싱턴의 풍수바람 <조선일보, 1996. 4. 25>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이민들이 늘고있는 워싱턴 인근지역에서는 이제 「펑슈이(풍수의 중국음)을 모르면 부동산업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 지역 주택개발업체에서는 앞으로 아시아 인구 밀집지역에 건설하는 주택단지는 풍수가의 자문을 받아 설계하기로 했다. 또 담당 직원들에게는 기본적인 풍수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직원은 "아시아인 고객들은 부동산업자가 「펭슈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어도 호감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9) 코가콜라 풍수괴담 뒤숭숭<경향일보, 2000. 10. 18>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가 각종 '괴담'으로 어수선하다. 이유는 경영실적 부진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부터이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소문은 회사가 지난 114년 동안의 애틀랜타 본사를 다른 도시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유는 "풍수지리에 따라 氣가 다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코카콜라는 소문을 수습하면서 본사를 옮기는 것은 아니고 관련일부 부문을 뉴욕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설명했으며, 풍수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풍수전문가가 본사 사무실을 돌러본 뒤 풍수에 맞지 않는 회장실을 새로 배치했다고 하였다. 체스넛 부회장은 "풍수지리는 동양의 오랜 전통사상인 만큼 충분히 존중할 만하다"고 말했다.

(10) 다저스타디움에 저주가 있다 <한국일보, 2001. 8. 4>
미국의 풍수지리학자가 "2001년 2월까지 다저스타디움에 저주가 있다"며 LA다저스의 총체적 부진을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6년간 풍수지리를 공부했다는 그 학자에 따르면 "금년 2월부터 2년 동안 다저스타디움의 운세가 좋지 않다"며 여러 가지 현상을 풀이했다. 현재 미국에서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 동양의 이론인 풍수지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진 : 실리콘밸리 전경(www.han-sung.ms.kr 이미지 인용)]


3. 유럽에 부는 풍수바람

(1) 풍수지리설 서구기업에도 붐 <한국일보, 2000. 9. 21>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서구 기업들도 풍수지리설을 영업활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항공업체인 브리티시 에어웨이, 컨설팅회사인 아더 앤더슨, 이동통신업체인 오렌지, 독일 함부르크의 파크-하얏트호텔 등 상당수 업체들이 풍수지리설을 기업활동에 애용하고 있다.

오렌지사는 풍수지리설에 근거, 자동차 번호판을 포함한 회사물품에 불운을 암시하는 숫자인 4를 피하고 행운의 숫자인 8을 사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함부르크의 파크-하얏트 호텔은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내부를 개조하여 고객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 63%대였던 이 호텔의 평균 객실 사용률이 올해는 70%선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슈퍼마켓 체인인 애트가도 풍수지리설을 제품판매에 적용해 내부구조를 전혀 색다르게 꾸민 것이 적중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2) 서구서도 건축 등에 풍수지리설 '인기' <매일경제신문, 2001. 8. 3>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풍수지리학자 조언을 받아 백악관 사무실을 개조하는 등 서구에서 풍수지리학이 인기를 끌면서 독일에서만 2천명이 넘는 컨설턴트가 활동 중이다. 풍수지리설이 가장 활발하게 응용되는 분야는 건축, 조립식 건축물 생산 업체. 이같은 조류를 재빠르게 파악,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건축을 하고 있으며, 바이에른주 마싱시를 풍수지리설에 따라 개발하면서 많은 업체들이 입주를 원하고 있다. 함부르크의 한 건축사무소장은 "일반 건축관련 세미나를 열면 참석자가 소수에 그치지만 풍수지리를 곁들이면 기대 이상의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고 말했다.

(3) 서구도 '풍수지리' 열풍 <한국일보, 2000. 9. 21>
독일 함부르크의 파크하아트 호텔은 객실 배치를 풍수지리에 맞추어 바꾸고, 조립건축업체인 베베르하우스와 매시브하우스는 건축물의 방위를 풍수지리적으로 정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양사의 영업이익은 크게 향상됐다. 현재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인 알타비스타에는 약 12만개의 풍수지리 관련 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유명인사 중엔 록뮤직의 여왕 마돈나, 영국의 팝스타 보이조지, 백만장자 도널드 트럼프 등이 풍수지리설의 대표적 신봉자,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최근 백악관 사무실을 개조하면서 풍수지리학자의 조언을 받았다.

(4)英 기업들 풍수지리 활용바람 <중앙일보, 1995. 5. 24>
영국 기업들 사이에 때아닌 풍수지리붐이 일고 있다. 항공사인 버진 애틀랜타社, 백화점업체인 막스 앤드 스펜서社, 리츠호텔 등 영국 내 많은 유수기업이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사무실 배치 등을 통해 자연의 氣를 흡수, 종업원들의 능률향상을 꾀하고 있는 것. 버진 애틀랜타社는 길일(吉日)을 택해 새로운 항공노선의 취항날짜를 결정하고 있으며, 리츠호텔은 사무실 위치 및 홀의 좌석 배치를 런던의 지력(地力)과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지리를 응용하고 있다.

[사진 : 풍수지리설의 신봉자로 알려진 영국의 팝스타 보이조지와 록뮤직의 여왕 마돈나(네이버 이미지, alglab2.sogang.ac.kr 이미지 인용 ]


4. 아시아에 부는 풍수바람

(1) 일본, '돈버는 운세풀이' 달력 인기 <중앙일보, 1998. 11. 27>
불황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일본에서는 요즘 '돈 버는 운'을 알려주는 달력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풍수 캘린더 가운데는 연애운, 금전운을 기재해 놓은 3종류가 있는데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역시 금전운 달력. 백화점측은 "주로 중, 장년층 손님이 많지만 최근에는 20대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고 밝혔다.

(2) 일본전문가들 "이사갈 새집 살계 해당" 주장 <한국일보, 2001. 8. 4>
갑작스러운 입원후 중병설이 나도는 다케시타 노보루 전 일본총리가 새로 지은 집의 풍수(風水)탓에 쓰러졌다는 해석이 나와 흥미를 끈다.

(3) 홍콩총독부 '風水'로 철거 논란 <중앙일보, 1996. 12. 04>
홍콩에서도 영국 식민통치의 상징인 총독관저를 97년 반환 뒤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풍수와 관련, 주목을 끌고 있다.

(4) 1조7천억원대…동건화 "입주 않겠다" ; '금싸라기 ;땅'임에도, 풍수나빠 꺼리는 듯; 홍콩 영총독관저 운명은...; <조선일보, 1997. 3. 7>
영국의 패튼 총독으로부터 관저열쇠를 받은 동건화 홍콩특구 초대행정장관 당선자는 "나는 입주할 생각이 없다. 박물관으로 보존하는 것이 어떻겠는가"했다. 일설에는 풍수지리를 몹시 따지는 홍콩인들의 성향 때문에 당선자가 입주를 꺼린다는 분석이다.

(5) 홍콩선 자동차번호도 경매 <중앙일보, 1996. 2. 21>
뿌리깊은 풍수(風水) 사상이 일상을 지배하는 홍콩에선 좋은 번호판에 대한 믿음이 거의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홍콩정청 교통부는 73년 5월부터 번호판에 대한 경매를 실시, 그 수익금을 자선단체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6) 은행과 風水사상 <중앙일보, 1997. 2. 2>
홍콩 중국은행 건물에는 우람한 돌사자 수호상이 세워져 있다. 풍수와 운세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사업상 액운을 막아준다는 믿음 때문에 설치하는 일이 흔하다.

(7) 대만 정치인들 風水 좋아한다 <중앙일보, 1995. 8. 2>
대만 정가에서는 풍수(風水)가 대접받고 있다. 고위관직자를 비롯해 집권당과 야당, 정치적 라이벌간의 정쟁(政爭)등에서 풍수에 관한 시비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대만 정가에 풍수나 점 등 역술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리등휘 직선 총통의 당선이후 각료 임명 등 논공행상이 시작되자,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이름난 풍수사, 점쟁이들을 찾아 입각여부 등을 점치기도 했다.

(8) 태국 CP회장 다닌 차와라논 <중앙일보, 1997. 1. 27>
태국 최대 다국적 기업집단인 CP그룹의 다닌 차와라논 회장은 닭을 길러 가공, 판매하는 세계 굴지의 종합 농, 수, 축산 회사에서 첨단 미래산업을 지향하는 그룹으로의 도약을 모색한지 5년. 그런 다닌 회장도 풍수(風水)를 굳게 믿고, 심지어 임원채용 면접 때는 용하다는 관상가를 배석시키기도 한다.

(9) 이사람/ 필리핀 대통령 유력한 에스트라다 <한겨레21, 1998. 5. 28>
대학을 중퇴한 코믹, 액션배우 출신으로 끝없는 자질시비를 빚어온 에스트라다 필리핀 부통령이 지난 5월 11일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런 그도 "셔츠색깔은 물론이고, 가구와 문짝 배치에까지 풍수설의 철저한 신봉자"라고 한다.

[사진 : 상 - 일본에서 제작된 풍수캘린더, 하 - 베트남에서 제작, 판매되고 있는 패철]


5. 한국에 부는 풍수바람

(1) 건설업계, 명당을 잡아라…풍수지리 마케팅 <매일경제신문, 2001. 5. 8>
건설업계에 분양전략의 하나로 풍수지리를 소재로 한 마케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쌍용건설. 쌍용건설은 '경희궁의 아침'이란 브랜드로 명명한, 종로구 내수동의 주상복합 건물 터가 백두대간에서 흘러온 정기가 모여 대대로 왕이 태어난다는 용맥의 왕궁터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금호산업도 여의도 주상복합아파트 '리첸시아' 분양시 이곳이 명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는 용인신갈지구에 조성한 그린빌 앙파트단지에 풍수지리를 이용한 설계를 적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주공은 건설업계의 동면기인 1월에 분양을 했음에도 100%계약이라는 성과를 거뒀으며 현재 일부 아파트의 경우 2천500만-3천만원의 프리미엄까지 붙어있는 상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풍수지리 사상이 한국민의 정서에 뿌리깊에 박혀있어 명당과 길지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최근 이를 이용한 홍보전략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2) "명당으로 모십니다"…풍수마케팅 바람 <동아일보, 2001. 5. 15>
주택업체들이 풍수지리설을 내세운 홍보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효성은 '화운트빌'이 '후고전저(後高前底)'의 명당이라는 내용을 담은 분양광고를 낼 예정. 이처럼 업체들이 풍수지리설에 매달리는 것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고 경기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지면서 아파트 청약을 망설이는 투자자들에게 자사 아파트가 명당에 위치해 있어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

(3) 아파트 생활에 풍수지리 응용<중앙일보, 2000. 4. 27>
풍수지리를 단순한 미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해(害)가 될 일도 없고, 새로운 분위기로 생활에 활기를 찾을 수 있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4) 첨단 아파트도 풍수지리 위력? <경향신문, 2001. 5. 8>
주거문화에 미치는 풍수지리나 이와 연계된 속설(俗說)의 위력은 여전하다. (주)대상이 최근 성공리에 분양을 마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아크로바"는 기본설계를 뜯어고친 사연을 갖고 있다. 예비 수요자 조사 결과 산 정상이 거실쪽에서 보이면 집안사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옛 삼풍백화점 터에 들어서는 아파트여서 더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당초 설계를 고쳐 건물의 방향을 조금 틀어야 했다. 관계자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는 21세기지만 주거에 대한 풍수는 어쩔 수 없어 설계를 변경하느라 애를 먹었다" 며 "그 덕분에 최고 3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5) 방배치, 가구방향따라 氣 달라진다-주택 설계 풍수활용 늘어<중앙일보, 1995. 10. 22>
묘자리나 집터를 잡는데 흔히 활용되는 풍수가 안방으로 파고 들고 있다. 최근들어 소형 건설회사의 경우 빌라 등을 지을 때 풍수 전문가들의 도움을 심심치 않게 받는가 하면 일반인들도 침실이나 아이들 공부방을 정할 때 풍수 이론을 염두에 두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6) 돈되는 아파트 고르기 <중앙일보, 2001. 3. 13>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매입할 때도 거액이 필요한 만큼 신중히 따져보고 골라야 한다. 아파트를 고르는 체크 포인트 중에 환경과 풍수여건이 좋은 아파트를 고르는 것이 있다. 조상들이 말한 풍수는 현대에도 유용하다. 마당과 앞은 낮고 주건물은 높은데 위치해야 한다는 전저후고(前低後高), 앞이 좁고 뒤는 넓어야 한다는 전착후판(前着後板)은 여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7) 아파트 신평면 쏟아진다 <한국일보, 2001. 8. 4>
주공 용인 신갈 - 생태 연못·실개천 등 단지별 테마마련, 이곳을 환경친화·어린이·가족·커뮤니티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된 「사람과 풍수가 어우러진 마을」로 조성키로 했다. 주택업체들이 올 가을에 분양할 아파트의 새 평면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 분양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삼성물산 주택개발부문은 32평형에 풍수지리를 고려해 "북쪽에 있던 현관을 남쪽으로 옮기고 여기에 현관+마당+실내정원 기능이 복합된 마당형 발코니를 도입해 쾌적한 실내환경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출처] 풍구 -- 6|작성자 해찬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