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의 유래와 발전사.
가. 命理學의 의의
命理學(一名 四柱學)이란 인간을 時間과 空間의 틀을 설정하여 크게는 宇宙論(宇: 空間, 陰, 月, 地.  宙: 時間, 陽, 日, 天)에 근거를 두고 작게는 十干 十二支에 따른 陰陽五行을 기준으로 小宇宙인 우리 인간의 生老病死 興亡盛衰를 豫知(예지)하여 미래를 준비하는데 이정표가 되도록 하는 學과 術이다.

혹자는 學을 앞세우고 혹자는 術을 앞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體와 用의 관계이며 陰과 陽의 모습이다. 學은 體요, 陽이며 術은 用이요, 陰인 것이다. 우주 근본의 원리는 陽이 陰(상대성)을 주도하고 있으므로 學의 완성을 이룬 후에 방술(方術)을 펼쳐야 진정한 命理 상담사가 되리라 생각한다.

學이 깊으면 그 사람의 術이 품위와 절도가 있고, 問卜者의 마음까지 헤아려 吉凶悔吝에 미혹되지 않게 하며 아울러 용기와 희망까지도 주게 되지만 學은 얕은데 術만 앞세우면 허황한 辯術(변술)로 상대방을 현혹시키고 마음에 충실함이 없이 問卜者의 눈치에 매달리며 이리저리 말을 돌려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뜬구름과 같은 말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비록 學은 깊은데 術이 부족한 것은 상대방이 다른 길로 들어서게는 하지 않으나 學은 없이 術만 내세우는 者는 일순간의 기분에 좌우되게 하여 자칫 작은 運을 크게 부풀려 헤어나지 못하는 미로에 빠트리게 하거나, 비방이나 계책을 자신이 선심 쓰듯 하여 복채만 탕진하게 만드는 경우를 초래하게 만든다.
나. 발전과정
1.陰陽
陰陽이란 우주 자연의 질서가 생긴 이래 존재해 왔다. 그것이 河圖의 先天易(自然易)으로 출발하여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先秦(선진)시대로, 사상의 황금기인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중의 陰陽家에서부터이다.
陰陽說은 음양이기(陰陽二氣)의 소장(消長)에 의해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는 思想으로, 이것을 先天 易의 원리에서 받아들여 그 기본원리로 하였다. 陰陽은 본래 山의 陰地와 陽地를 가리켰다고 한다. 역학에서의 활용은 처음에 강(剛)과 유(柔)의 원리로 생성변화를 설명하다가, 후에 강유(剛柔) 대신에 음양으로 받아들여 여기에 순환사상이 접목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천체의 운행과 사계(四季)의 추이에서 고찰해낸 것으로 보인다.

2.陰陽家  
宇宙의 양대 원리를 음(陰)과 양(陽)으로 규정하고 陰陽이 서로 화합과 견제 작용을 하여 만물의 生長斂藏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여 발전된 유파이다.
제자백가의 분류를 맨 처음 시도한 인물은 사마천(司馬遷)의 부친 사마담(司馬談 : ~B.C 110)이다.
사마담은 크게 음양가(陰陽家)․유가(儒家)․묵가(墨家)․명가(名家)․법가(法家)․도덕가(道德家)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음양가이다.

사마담의 평에 의하면 “陰陽家는 너무나 吉凶의 조짐을 중시하고, 꺼리는 바가 많으며 사람들이 행하는데 두려워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배정한 4계절의 순서와 순환은 가히 칭찬 받을 만하다”고 평하였다.
음양가에 대한 일반적 견해의 장점은 順天의 이치를 알게 하고 일월성숙(日月星宿)의 운행을 추산하여 천문을 보고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일러주었다는데 그 평을 두기도 한다.

3.오행설
1)음양의 이원적 개념 외에 자연현상을 오행(五行 : 木․金․火․水․土)의 相生, 相剋, 反生, 反剋 작용에 따른 순환에 의해 변화, 발전한다는 五行說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가 추연(鄒衍)이다. 그는 오행설을 토대로 제왕의 운명을 가늠하고 그에 의하여 왕조교체의 원리와 인간의 吉凶禍福을 설명하였다.
음양설과 오행설은 처음에는 각각 별도로 시작되었으나, 漢代에 합쳐져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로 발전하게 되었다.

2)추자(추연:鄒衍 : BC 305?~BC 240?)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제(齋)나라 사람으로, "추연" 이라고도 한다. 처음으로 음양오행설을 주창하였으며, 자연과 인사(人事)에 관한 모든 사상을 음양과 오행의 조화 원리로 설명하였다. 역사도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5행의 성쇠 원리에 따라 변하며, 이로 인해 역사의 추이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設)을 주장하였다.
음양오행설은 "여씨춘추"와 "동중서"(董仲舒)의 사상체계에 영향을 끼쳤으며, "주운편"(主運篇)을 저술하였고, 한서 "예문지"에 "추자"(鄒子) "추자종시"(鄒子終始) 등의 책을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4.음양오행설 (陰陽五行說)  
이와 같이 음양설과 오행설은 발생을 달리하는 사상이었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이후 융합되어 음양오행설이 되었고, 특히 한(漢)나라 때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오행설은 고대인의 생활에 필요한 5가지 소재, 즉 민용오재(民用五材)의 사상과도 연관된다. 생활의 필수인 수화(水火)로 시작하여 목금(木金)에 이르며, 그 기반이 되는 토(土)로 끝난다. 이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의 순서는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에 있는데 생성오행(生成五行)이라 한다. 이 오재설에 대하여 전국시대 중기의 음양가 추연(鄒衍)이 주장한 것이 토목금화수(土木金火水)라는,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있는 것을 이긴다는 오행상승(五行相勝;五行相剋)에 의한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다. 또 천문역수(天文曆數)의 학(學)과 관련이 있는 예기(禮記) “월령편”(月令篇)에는 사시(四時)와 사방(四方)의 관념에 의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즉 앞에 있는 것에서 뒤에 있는 것이 생긴다는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차서(次序)가 기록되고 있다.
오행의 “행”(行)은 순환, 유행(流行), 운행의 의미와 통한다.

5. 命理學의 역사
四柱란 출생 年月日時의 네 기둥을 말하며 八字란 여덟 글자를 뜻한다. 여기에 陰陽五行의 조화를 살펴 生老病死, 富貴貧賤, 육친과의 영향력을 판단하게 되는데, 이것을 학문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위대한 命理 學이다.
고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에 陰陽家라는 학설이 먼저 존재했고, 다시 태양계의 五行星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오행 학설이 생겨나 陰陽五行學으로 합쳐지게 되었으며 年月日時의 十干 十二支를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四柱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또한 干支를 활용하여 시간을 기록한 것은 동한 순제(東漢順帝: 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BC 12C에 동양에서 태양력을 완성).
天氣를 상징하는 十 天干과 地氣를 뜻하는 十二 地支를 각각 독립적으로 날짜(日)와 달(月)에 적용하다 황제(黃帝)시대 대요씨(大橈氏)에 의해 육십갑자(六十甲子) 납음오행(納音五行)이 만들어졌다. 그후 풍후씨(風后氏)를 거쳐 唐나라 이허중(李虛中)이 십천간(十天干)과 십이지지(十二地支)를 태어난 年.月.日.時.에 처음으로 적용하여 인간운명의 吉凶禍福과 生老病死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命理學으로의 출발이라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년주(年柱)를 기준으로 하고 다른 干支는 보조로 오행(五行)의 旺衰와 생극제화를 살피고 여기에 각종 신살(神殺)을 가하여 길흉화복을 판단하였다. 그러나 잘 맞지 않았으며  서자평(徐子平)에 의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간(日干) 중심의 四柱가 시작되었으며 송나라 서대승이 임상을 통하여 기초 이론을 확립하였다.

日干을 자신으로 보는 것은 년 월 일 시의 순서로 볼 때, 日柱가 후천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四象(花, 亨)이요, 현실이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